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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아직 군중에게 말씀하고 계실 때에 예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밖에 와 서서 예수와 말씀을 나눌 기회를 찾고 있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예수께 "선생님, 선생님의 어머님과 형제분들이 선생님과 이야기를 하시겠다고 밖에 서서 찾고 계십니다." 하고 알려드렸다. 예수께서는 말을 전해 준 사람에게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형제들이냐?"하고 물으셨다. 그리고 제자들을 가리키시며 "바로 이 사람들이 내 어머니이며 내 형제들이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다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다."하고 말씀하셨다. (마태 12,46-50)

어머니와 형제들이 찾아와 그분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하지만 예수께서는 도무지 시간을 내려 하지 않으신다. 그분은 그들의 요청에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형제들이냐?"하고 물으시고는 제자들을 가리키신다. 여기서 우리는 부모님과 사랑하는 이들이 몇 분만 시간을 내달라는 요구를 무시해야 하는 것일까?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 기회를 이용해 제자들에게 역할에 관해 주의를 당부하고 계시며, 이 예방조치는 아무런 역할도 맡지 말라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자신의 역할에 지나치게 매달리지 말라는, 즉 자기 집단과 지나치게 밀착하지 말라는 당부이다. 가족이나 동료들에게서 인정받으려는 욕구는 곧잘 자아상(self-image)을 형성해 우리의 역할을 제대로 완수하지 못하도록 작용한다. 그리고 우리의 자아상과 세계관이 하느님의 뜻에 응답하지 못하도록 할 때 영적 여정은 여러 동기를 건너뛸 뿐만 아니라 거기서 벗어나게 한다. 이 대목에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충격을 주기 위해 당신 어머니의 역할까지도 제한된 의미 밖에 지니지 못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계신다. 우리 역시 그것이 어떤 것이든 거기에 집착하지 않으려는 흔연한 자세를 가질 때 비로소 소명에 몰입할 수 있다. 이 말은 우리의 역할에 따른 의무를 무시해도 된다는 것이 아니라 독차지하겠다는 태도에서 벗어나라는 것이다.

만일 내가 어머니라면 당연히 어머니로서의 역할을 완수하고 싶어할 것이다. 그러나 자녀에게 나의 뜻대로 살아야 한다거나 이루지 못한 꿈을 요구해서는 안된다.

사실 용기있는 남자라면 가족을 지배하거나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알뜰하게 보살펴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자녀들의 입장에서는 가족들의 강요는 감당하기 힘들기 때문에 그들은 자라면서 부모가 저지른 잘못을 그대로 답습하게 된다.

우리의 복되신 어머니는 아들이 어머니로서의 당신 역할을 명백하게 무시했다고 해서 속상해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이미 '역할 탈피' 과정을 통과하셨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당신에게 동정생활을 하기를 바라신다는 사실을 깨닫고 계셨다. 그래서 천사는 "하느님께서 당신이 어머니가 되기를 원하신다."라고 말했던 것이다. 평범한 처녀가 이런 말을 들었을 때 과연 무슨 생각을 하겠는가? 맨 처음 떠오르는 생각이 '내가 처녀로 아기를 낳게 되는구나.'하는 것이 결코 아니었을 것이다. 오히려 '이렇게 끝나는구나. 하느님이 내게 바라신다고 믿었던 나의 확신은 잘못되었음에 틀림없어. 난 하느님의 뜻을 온전히 알지 못하고 있었던 거야. 그저 나 혼자 안다고 생각했을 뿐이지.'하고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그분에게 어머니가 되라는 말은 모든 계획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으며, 하느님의 뜻을 식별할 줄 안다고 믿었던 확신을 와르르 무너지게 했다. 그래서 그분의 응답은 보다 많은 정보를 구하는 수준에 있었으며 "나는 부부관계를 맺지 않았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이루어지겠어요?"하는 질문은 명백한 모순점을 푸는 열쇠라고 할 수 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신 것은 역할이나 생활방식을 강요하신 것이 아니라 역할에 대한 강박적인 태도를 버리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태도는 하느님의 뜻을 이루는 데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말씀에 따르면 여인에게서 태어난 사람 가운데 가장 위대한 사람은 세례자 요한이었다. 그가 예언자로서의 역할은 메시아를 지목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그는 예수께서 제자들을 보내 "당신이 메시아입니까, 아니면 우리가 다른 사람을 기다려야 합니까?"하고 물었을까? 이 거룩한 사람도 상대방을 엉뚱하게 잘못 짚은 건 아닌지 모르겠다고 생각한 것은 아닐까?

예수께서는 요한이 메시아에 대해 가지고 있던 선입견에 부합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요한은 금욕주의자였지만 예수는 아니었다. 요한의 제자들은 단식을 했지만 예수의 제자들은 하지 않았다. 요한의 제자들은 율법을 지켰지만 예수의 제자들은 그렇지 않았다. 실제로 예수께서는 랍비의 관습 가운데 많은 것을 무시하셨다. 그분은 성서를 거의 언급하지 않으셨다. 그런데 저쪽 사람들은 성서를 자기네 가르침의 토대로 삼았다. 랍비들은 공개적으로 여자를 거론하는 일이 없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여자들과 허물없이 이야기를 나누었고 친하게 지내셨다. 이렇게 모범적인 역할을 고집하는 사람들은 규칙을 지키고 사회적 기대에 부응하는 데 주의를 기울였으며, 사람보다 법을 우선시했다.

어쩌면 요한은 자신의 금욕주의적 이상에 너무 매달린 나머지 '나자렛의 예수가 정말 메시아일까?'하는 의문을 품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만일 그같은 의혹이 그를 괴롭혔다면 이런 생각도 했을 것이다. '문제가 잘못된 것이라면 그것을 바로잡는 것이 내 의무가 아닐까?' 요한은 감옥에 갇혀 의기소침한 상태에서 고통을 겪었기 때문에 이처럼 극한적인 의구심을 일으켰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자기 사명의 신빙성에 대한 이 고뇌 어린 의구심을, 금욕주의자로서의 자기 역할에 지나치게 매달리는 그의 집착을 치유하는 방편으로 이용하셨다.

사실 이러한 집착은 하느님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며, 순수한 신앙의 하느님은 당신이 누구이신가를 두고 떠올리는 우리의 생각을 끊임없이 차단하신다. 예수께서는 요한의 제자들이 던진 질문에 "너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다. 내가 바로 메시아다."라고 하심으로써 그 옛날 이사야가 메시아께서 행하라고 예언한 그런 종류의 기적을 행함으로써 말보다는 행동으로 요한을 안심시켰다.

예수께서는 당신 제자들에게 "누가 내 어머니이냐?"하고 물으셨다. 그리고 그에 대한 답은 하느님의 뜻을 생각만으로 행하려는 사람들이 아니라 실제로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들임을 알게 해주셨다. 그리고 영적 여정은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벗어던지는 것이므로 우리의 역할을 잃어버렸다고 해서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렇게 생각할 뿐이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이때조차도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어 당신을 내어주셨다.

- 토머스 키팅, <깨달음의 길 2>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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