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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이청준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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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서 기적이 일어납니다.
“하시는 일마다 주님께서는 진실하시고, 이루신 일마다 자애로우시나이다. 당신께 비옵는 누구에게나, 진정으로 비는 누구에게나, 주님께서는 가까이 계시나이다.”(화답송) 우리의 삶 속에서 기적은 날마다 일어나고 있습니다. 단지 우리 안에 장애물을 지니고 있는 탓으로 우리가 그 기적을 깨닫지도, 체험하지도 못할 뿐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볼 줄을 모릅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기적을 원하고 있습니다. 사실상 우리가 원하는 것보다 더 위대하고 더 신비스러운 기적은 시시각각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고, 나보다 나를 더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언제나 우리 주위에 계시고 우리를 감싸고 계시고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만물 위에 계시고 만물을 꿰뚫어 계시며 만물 안에 계십니다(제2독서, 에페 4,6).” 지금 여기서 주님께서는 현존하시고 활동하십니다. 여기서 창조와 구원이 실현됩니다.
우리는 “기도의 열매”로서 현재를 살아간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현재를 살아가는 일에 길들여짐”으로써 기도를 더 잘 할 수 있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현재를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현재를 살아간다는 것은 지금 여기에서 하느님의 현존과 활동에 동의하고 승복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현재를 살아간다는 것은 바로 충만한 현재인 영원을 살아간다는 것을 말합니다. 현재를 살아간다는 것은 바로 하느님 나라를 살아간다는 것을 말합니다. 현재를 살아갈 때 기적은 매순간 일어납니다.
주님의 현존과 그분의 능력을 믿는 이는 참으로 복됩니다. 어린이와 같은 단순한 마음으로 주님을 믿는 이는 복됩니다. 오늘 제1독서에 나오는 것처럼, 주님의 말씀을 믿고 보리떡 스무 개와 햇곡식 이삭으로 백 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배불리 먹인 엘리사는 복된 예언자입니다. 제2독서에 나오는 것처럼 주님을 위해서 일하다가 감옥에 갇힌 바오로 사도는 복됩니다. 감옥 안에서조차 신도들에게 하느님의 부르심에 순명하도록 격려하는 바오로는 참으로 복됩니다. 박해 중에 그의 믿음이 얼마나 순수합니까? 감옥 안에서도 성령께서 묶어주시는 평화의 줄을 신뢰하는 바오로는 복된 사도입니다.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 이상을 먹이신 주님께서는 진정 복되신 분이십니다. 세상의 명예를 쫓지 아니하고 오직 아버지와의 일치 속에서 생활하시니 복되십니다. “그러므로 주님 저희가 지금 이 세상에 살면서도 마음은 영원한 세상을 그리워하게 하소서(오늘 본기도 참조).” 오늘의 복음에 나타나는 예수님께서 오천명 이상을 먹이신 기적이야기는 흔히 성체성사와 결부지어 말씀의 전례 안에서 들려집니다. 이제는 주님께서 미사 중에 당신의 전 존재를 내어주시니 믿음과 사랑으로 그분을 받아 모시는 우리는 복된 사람들입니다. “향심기도의 효과를 일상생활에로 확대하는 방법 10가지” 중 하나가 바로 성체성사에 정규적으로 참여하는 것입니다(마음을 열고 가슴을 열고, 178쪽 9번 참조).
주님의 현존과 활동에 동의하고 승복하는 일에 길들여지는 것, 그것이 가장 놀라운 기적입니다. 왜냐하면 주님께 동의하고 승복함으로써 우리는 가장 소중한 것, 주님 당신을 선물로 받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어떤 것이 아니라 주님을 선물로 받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기도 중에 기적이 일어납니다. 지금 여기서 우리가 하느님의 현존을 신뢰하고 기도할 때 거기서 기적이 일어납니다. 일상 속에서 주님의 현존에 동의하고 활동에 승복할 때 기적은 일어납니다.
미사 중에 잔치의 주인이신 그리스도의 현존과 활동을 믿고 가슴이 열릴 때 신비스러운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받아 모시고 난 다음 뜨거운 마음으로 화답송을 하고, 구원의 기쁜 소식을 듣기 전에 감사와 찬미의 마음으로 알렐루야를 노래합니다. 빵과 포도주가 주님의 살과 피로 변화되는 순간에 우리의 가슴은 뜨거워집니다. 그래서 사제는 “신앙의 신비여”라고 환호하고 신도들도 환호의 응답을 합니다.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주님의 죽음을 전하며, 부활을 선포하나이다.” 이 말씀은 수난하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지금 이 미사 중에 현존하시고 활동하시면서 당신의 빠스카 은총을 베풀어주심을 고백하며 환호하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 놀라운 기적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가 이러한 기적을 조금이라도 깨닫는다면 미사를 그저 해치우기 위해 참여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고해성사 보지 않기 위해서, 또는 교회법상 주일미사를 참여하는 것이 의무라고 하니까, 또는 마음이 조금 편하니까 주일미사를 참여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미사는 단지 의무적인 차원에서 참여하는 것이 아닙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돌처럼 굳은 심장으로 미사에 참여합니까? 미사에 참여하는 많은 사람들의 의식은 다음과 같습니다. “어떻게 이것을 백 명이나 되는 사람들 앞에 내놓을 수 있겠습니까?(오늘 제1독서).” “이렇게 많은 사람에게 그것이 무슨 소용이 되겠습니까?(오늘 복음)” 사람들은 여전히 고정관념, 선입관에 사로잡혀서 미사에 참여합니다.
우리에게는 기도와 일상과 전례 안에서 매순간 고정관념과 선입관을 넘어서는 수련, 믿음의 수련, 초자연적 은총에 의탁하는 수련이 필요합니다. 우리에게는 우리가 길들여져 있는 현재의 의식수준을 넘어서서 저 너머에 현존하시는 주님께로 다가가기 위한 수련, 의식을 재구성하는 수련이 필요합니다. 우리에게는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에로 자신을 열어놓는 수련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미사의 의미만 제대로 깨닫게 된다면 어찌 냉담자가 될 수 있겠습니까? 주님의 현존과 활동에 대한 믿음과 희망과 사랑이 성장해 나갈 때 미사는 우리의 삶속에서 가장 큰 선물이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축제요 신비요 기적입니다. 미사는 우리 삶의 가장 소중한 시간입니다. 미사가 거행되는 중에 순간순간 주님의 부드러운 손길이 감미롭고, 주님의 따뜻한 포옹을 놓치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만일 미사의 은혜가 우리의 전 존재를 감싸게 된다면, 우리는 부활하신 주님과 보다 깊은 친교를 누릴 것이고, 주님 안에서 우리는 하나가 될 것입니다. 세례성사와 성체성사를 통해 주님께서는 우리를 당신의 영으로 성화시켜 주시고 일치시켜 주십니다. “그리스도의 몸도 하나이며 성령도 하나입니다. 이와 같이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당신의 백성으로 부르셔서 안겨 주시는 희망도 하나입니다. 주님도 한 분이시고 믿음도 하나이고 세례도 하나이며 만민의 아버지이신 하느님도 한 분이십니다(제2독서; 에페4,4~6).”
주님의 현존과 활동에 동의하지 않고서 우리가 어찌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라고 기도할 수 있겠습니까? “눈이란 눈이 모두 당신을 바라오면, 먹을 것을 제때에 주시나이다. 당신께서 그 손을 벌려 주시면, 목숨 있는 모든 것, 원을 채우나이다(화답송).” 우리가 영성체 때 주님의 기도를 합송하는 것은 성체성사 안에서의 주님의 현존에 대한 믿음으로 바치는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왜 육적으로뿐 아니라 영적으로 메마르고 굶주려 있습니까? 주님께서 주시는 것을 그들이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것을 우리가 그들에게 전달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님과 떨어져 있다고 생각하는 그것이 우리에게 불행을 가져다줍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그것이 우리를 굶주리게 합니다. “우리의 병리는 단순히 말해 이것이다. 우리는 신성한 일치를 즐기지도 못하고 그것에 대한 인식도 전혀 없으면서 자각적인 자아 의식을 온전히 갖게 된다는 것이다. 경험으로 얻어지는 그러한 확신(신성한 일치의 확신)이 없기 때문에, 우리의 연약한 자아는 하느님과 다른 사람들로부터 떨어져 있다는 괴로운 감각을 떨쳐 버리기 위해 온갖 수단을 다 강구하게 된다(「관상기도를 통해 하느님께 나아가는 길」, 56~57쪽).” 그러므로 이러한 의식수준에서 해방되기 위해 우리는 기도와 전례 안에서, 그리고 일상의 사건들을 맞이하고 사람들을 만나는 그 속에서 지속적으로 수련을 해 나가는 것입니다. 주님께 대한 새로운 동의와 새로운 승복의 수련을 해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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