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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안충석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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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성서 말씀에서 요한이 "선생님 어떤 사람이 선생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을 보았는데 우리와 함께 다니며 연대하지 않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래서 그런 일을 못하게 막았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는 "말리지 말아라.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사람은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공동선에 적극적인 지지도 있지만 소극적인 지지도 있다는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적극적 지지자들 못지 않게 소극적 지지자들을 오늘 복음성서에서 대단히 소중하게 여기십니다.
사실 세상에는 우리가 스승이라 고백하는 예수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사람들보다 소극적으로 지지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소극적 지지자들을 받아들이고 그들을 적극적 지지자로 만들기 위한 교회의 연대 노력입니다. 연대는 나와 네가 아닌 우리 안에 하느님이 현존하고 계심을 증거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이웃 사랑은 연대의 주춧돌입니다. 연대를 통해 세상 안에서 이루어야 할 일은 너무나 많지만, 핵심은 인간-세상-을 죄로부터 해방시키고 하느님과 화해시키는 것입니다. 그러자면 죄를 거슬러 투쟁하는 일은 필연입니다. 만약 세상 안에 "우리를 괴롭히는 악들의 뿌리", 즉 죄를 양산하는 "죄의 구조"(structures of sin)가 존재한다면(「사회적 관심」36항), 그것을 제거하는 것만큼 시급한 연대의 목표도 없습니다.
연대란 무엇일까요? 연대의 기초는 이웃에 대한 관심과 사랑입니다. 굳이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도 '선의의 모든 사람들'이라면, 공동선의 가치를 함께 공유할 수 있고 또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다 연대의 대상입니다. 사도 요한처럼, 예수의 이름으로 행동하나 자신들을 따르지 않는 사람이라 해서 그 사람을 배척할 필요는 없습니다(마르 9, 38). 예수는 이에 대해 아주 간명한 해답을 제시해 줍니다. "사실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사람은 우리를 지지하는 것입니다"(마르 9, 40).
물론 소극적 지지는 적극적 지지와 엄연히 다릅니다. 소극적 지지로는 연대의 주체가 되기 힘듭니다. 연대란 인간의 불행에 대한 어떤 "동정심 내지 피상적 근심"이 아니라 "공동선에 투신하겠다는 강력하고 항속적인 결의입니다. 우리 모두가 모두에게 책임이 있는 만큼, 만인의 선익과 각 개인의 선익에 투신함을 뜻"합니다(요한 바오로 2세의 회칙「사회적 관심」38항).
따라서 연대는 무엇보다 적극적인 정신 자세와 태도를 요구합니다. 그것은 열린 마음이 없으면 결코 이룰 수 없는 이상입니다. 그것은 소극적 지지만으로 감당하기 힘든 투신입니다. 하지만 오늘 복음의 전반부(마르 9, 38-41)에서 보듯이, 예수는 적극적 지지자들 못지 않게 소극적 지지자들을 소중히 여깁니다.
신앙인의 마음은 언제나 이웃을 향해 열려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해서 타종교인들을 배척하거나 같은 그리스도인이라도 다른 종파라해서 갈라진 형제들을 노골적으로 비난하고 적대시하는 일은 옳지 못합니다. 더군다나 예수의 뒤를 따르겠다고 세례를 받은 사람들이라면 같은 예수를 놓고 서로 삿대질하기 전에 인류 복음화라는 공동의 목표를 위해 함께 연대하는 일이 우선입니다. 물론 하느님 나라의 건설을 지향하는 이 연대는 함께 거부하고 끊어버려야 할 죄에 대한 투쟁도 구체적으로 병행하여야 합니다. 주지하다시피, 예수가 선포한 구원의 기쁜 소식은 죄의 사슬에 억눌린 이들에게 죄로부터의 자유로운 해방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바야흐로 우리나라 정치권과 집권 노무현 대통령은 국민 참여 정부를 내세우고 국민참여 연대로 당선된 후 7개월 동안 나라를 정치하고 있습니다. 개혁과 참여는 수레의 두 바퀴와 같아서 어느 한 쪽에 무게 중심이 쏠리면 흔들리며 무게 중심을 잡고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개혁과 민주화란 반개혁 반민주에 대한 거부를 의미하고 그 내용으로 합니다. 따라서 거부할 때는 거부할 수 있는 힘을 참여 연대하는 데서 더불어 함께 힘의 중심을 잡아 나아가야만 합니다. 참여 연대라는 것이 집권자나 주위에 있는 측근 소수와 코드만 맞는 참여 연대라면 더 큰 시민과 국민 참여 연대에 저항에 부딪쳐서 온 국민적으로 거부되고 말 것입니다.
현 정권에 남은 것은 제발 나를 만만히 보지 말라는 안타까운 패기 밖에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개혁, 민주, 탈 권위, 탈 정치문화의 전진도 이상이고 반드시 가야할 정도(正道)이지만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사람은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 는 열린 마음으로, 온 국민 참여 연대가 개혁과 민주, 탈 정치 문화를 50보, 60보 열어가면서 우리나라 정치·경제·사회 안정의 뿌리를 내리는 일이 그 어느 것보다도 최우선시되는 시급한 급선무가 아닐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패기와 오만으로 구차한 변명과 핑계나 대면서 자기만 앞서 100보 나아가고 국민참여 연대는 말로만 앞세우며 내 코드대로 하겠다는 인선으로만 나아가겠다는 것은 어떤 이의 지적대로 교주행세 하겠다는 결과가 아닐까요? 그런 모든 개혁이나 탈 정치문화 프로그램과 그런 통치자는 거짓 자아일 뿐인 것입니다.
오늘 복음성서 말씀에서 '네 손이나 말이 죄짓게 하거든 찍어 버려라. 두 손이나 두 발을 가지고 꺼지지 않는 지옥의 불 속으로 들어가는 것보다는 불구의 몸이 되더라도 영원한 생명에 들어가는 편이 나을 것이다.'을 듣습니다. 이는 '거짓 자아나 더 많이만 소유하려는 삶의 계획을 찍어 버려라. 우리 인간은 더 많이 소유하는 것보다도 어떻게 더 풍요로운 존재인 영원한 생명에 들어가는 편이 나을 것이다.'는 지적인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후반부(마르 9, 42-43,45,47-48)에서 보듯이, 죄에 대한 예수의 태도는 매우 단호하고 근본적입니다. 특히 예수는 제일 먼저 남에게 죄를 짓게 만드는 행동에 대해서 추상같은 경고를 발합니다. 그리고 다른 이를 죄에 빠뜨리지 않도록 자기 자신부터 죄악을 범하지 않으려 애쓰며 무조건 죄의 유혹을 물리칠 것을, 자신의 손과 발과 눈을 자르고 빼어버리는 한이 있어도 죄와는 일체 상종하지 말 것을 요구합니다. 그것은 곧 하느님을 거스르는 죄와 악에서 마음을 돌려 회개하라는 부름입니다. 회개란 단지 죄에서 멀어지려는 소극적 자세가 아니라 죄와 정면으로 맞서 싸우려는 적극적인 정신 자세로의 변화입니다. 회개의 연장(延長)이 곧 연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 연대의 뿌리가 깊고 견고할수록 죄의 세력은 약화되고, 반대로 연대가 약화될수록 죄의 뿌리는 깊고 견고해집니다. 달리 말하면, 늘 깨어있어 회개하는 신앙인이 많을수록 연대의 고리는 튼튼해지고 죄의 구조적 뿌리는 잘려 나갑니다. 신앙인들의 공동체로서 교회의 우선적 관심과 선택은 과연 무엇일까요? 그것은 사람들을 괴롭히는 악의 뿌리를 찾아 제거하는 일입니다. 신앙인으로서 죄의 구조가 존재하는 세상에서 안주한다는 것 자체가 죄악이 아닙니까! 회개는 지금 이 순간 늘 이루어져야 합니다. 쇄신은 교회의 존재 방식입니다.
이제 집권자들이나 정치가들이 말만 앞세운 국민 참여 연대를 우리 시민 참여 연대로 실천해 나아가야만 내년 총선에서 정치 부활의 길목으로 들어 설 수 있습니다.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사람은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이라는 주님의 지적대로 소극적으로 지지하는 사람들까지 참여 연대하여, 국민 통합을 반드시 이루어 나아가야 하는 것이 우리 정치의 절체절명의 과제인 것입니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사람이라고 하여 너희에게 물 한잔이라도 주는 사람은 반드시 자기의 상을 받을 것이다." 주님, 당신의 말씀은 진리이시니, 진리를 위하여 저희 몸 바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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