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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윤행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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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구 농어촌 사목을 전담하고 있다보니 집도 절도 없는 신세라 이번 부활성야 미사는 진주에 있는 수녀원에서 수녀님들과 지인 몇 분들과 함께 봉헌했습니다. 부활찬송을 하는데, 그동안 해마다 부활찬송 연습을 열심히 해왔던 터라 이번에는 두 번만 연습을 하고 본 무대(?)에 선 것이 화근이 되어 무려 여섯 곳이나 틀리는 사고를 치고 말았습니다. 미사가 끝나고 다과를 나누는 자리에서 수녀님들이 잘했다고 칭찬을 하셨지만 그 말씀은 자라는 아이(?) 기죽이지 않으려고 하신 말씀이었지요. 예전(사제가 되기 전)같았으면 자신의 실수가 부끄럽고 화가 나서 안절부절 못했을텐데 그날은 너무도 태연하고 당당하게 저의 실수를 인정하고 받아 들였습니다.
순교자 집안에서 태어나 엄격한 신앙생활을 하며 자라난 저는 교회의 가르침대로 철저하게 살아가고자 노력했습니다. 비교적 늦은 나이에 입학한 신학교 생활에서도 교칙을 철저히 지키며 엄격한 생활을 했었지요. 오죽했으면 저에게 붙여진 별명 중에서 윤세니즘(18세기 프랑스에서 시작된 엄격주의로 육신의 고행과 극기를 즐겨한 얀세니즘이라는 이단에 제 성씨를 붙여서 만든 것)이라는 것이 있었겠습니까. 그러다보니 저 자신의 실수는 물론이요 다른 사람의 실수나 허물까지 용납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몇 년을 생활하며 제 스스로는 신학교 생활을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날 주의를 돌아보니 제 곁에는 엄격한 규칙만 있을 뿐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제게 있어 하느님의 사랑(이하 자비)은 머리(관념) 속에만 있지 제 삶, 어느 곳에서도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한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부터 성체조배를 통해 그분께 제 자신을 열어 드리기 시작했고 조금씩 그분의 자비를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그 덕분으로(주님의 은총으로) 사제로서의 삶을 시작하고 나서 신자 분들에게 조금씩이나마 그분의 자비를 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특히 고해(화해)성사를 통해 그분의 자비를 전하고자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데, 예를 들면 고해자가 주일 미사를 두 번이나(한 달에) 빠졌다며 죄스러워하면 저는 "형제님은 그렇게 생각하시지만 제 생각에 그분은 '아니다 괜찮다. 그래도 두 번이나 나왔쟎냐' 하시며 안아 주실 것입니다" 라고 말씀드립니다.
그 이전에도 그랬지만 사제의 삶을 시작하고 나서도 수 없이 많은 죄를 지으며 살아 오고 있습니다. 그 많은 죄와 허물 앞에 부끄러워 낯을 들 수가 없지만 그래도 그분의 헤아릴 길없는 자비에 의탁하며 또 하루를 시작하곤 합니다. 자신이 저지른 죄에 억눌려 숨조차 쉴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울 때 저는 돌아가신 어머니께서 저희들에게 자주 하시던 말씀을 떠올리며 새로운 용기를 얻곤 했습니다. 다른 어머니들과 마찬가지로 참으로 인자하셨던 어머니께서는 저희들이 잘못했을 때 그 잘못을 책하시기는 커녕 "괜찮다"라며 늘 용기를 북돋아 주셨습니다. 어머니의 그 말씀을 떠올리며 그분도 제게 그렇게 말씀하실 것이라 믿었습니다.
맡고 있는 업무상 농민들을 자주 만나게 되는데 얼마 전 함양산골에서 유기농법으로 농사를 짓고 있는 젊은 부부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손바닥만한 단칸방에, 그것도 남의 집에 아이들 넷과 함께 정말 가난하게, 그러나 참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는 부부인데 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일이 있어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잘 익은 김치에 제가 사들고 간 돼지고기를 넣고 끊인 김치찌개로 저녁을 먹고는 부엌바닥에 앉아 부부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다행히 부부가 한 걸음씩 양보하고 서로의 입장을 존중하기로 해서 그 문제는 잘 해결되었습니다.
본론을 마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동안 그 자매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자기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죄만 짓고 살았기에 하느님께 감히 용서해달라는 말씀을 드릴 수가 없었는데 창세기에서 아브라함이 소돔과 고모라를 위해 하느님께 비는 말씀을 읽고 용기를 얻었다고 합니다. 창세기에서 아브라함은 소돔과 고모라를 구하기 위해 하느님께 여러번 간청합니다. "저 도시 안에 죄없는 사람이 오십 명이 있다면...티끌이나 재만도 못한 주제에 감히 아룁니다. ... 한 번만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만일 열 사람밖에 안되어도 되겠습니까?" 야훼께서 대답하셨다. "그 열 사람을 보아서라도 멸하지 않겠다." 그 자매님은 이 말씀을 자신의 처지에 비추어 이렇게 알아 들었다고 합니다. "저에게 열가지의 죄가 있다면 그 열가지 죄 때문에 저를 벌하시겠습니까?...티끌이나 재만도 못한 주제에 감히 아룁니다.....한 번만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만일 저에게 오십 가지 죄가 있다면 그 죄 때문에 저를 벌하시겠습니까? 야훼께서 대답하셨다. "괜찮다. 그래도 용서해 주마." 자매님의 그 말씀을 들으며 하느님의 자비가 얼마나 큰지 새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오늘 부활 두 번째 주일은 하느님의 무한하신 자비에 감사드리는 날입니다. 엉망으로 불렀던 이번 부활찬송에 나오는 "오! 헤아릴 길 없는 주님 사랑"이라는 말씀처럼 주님의 사랑은 우리의 모든 능력을 동원한다해도 결코 헤아릴 길 없습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모든 죄를 말끔히 씻어주실 수 있으십니다. 오늘 저는 주님 사랑의 바다에 풍덩 빠지고 싶습니다. 그리고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한 번 빠져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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