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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윤행도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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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생 시절 이맘 때가 되면 출신 교구와 출신 본당에서 몰려 온 아이들에게 신학교의 곳곳을 안내하고 설명하느라 진땀을 흘렸던 기억이 납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성소, 하느님의 부르심이라는 것이 저처럼 누군가가 사제의 길이나 수도자의 길로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이라고만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성소주일날 "성소주일은 사제나 수도자를 희망하는 조무래기들만을 위한 날이 아니다. 성소주일은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살아가고 있는 사제, 수도자들이 자신을 불러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는 날이요 또한 자신의 삶이 부르심에 얼마나 충실한가를 되돌아 보는 날이다. 그리고 사제나 수도자 뿐만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살펴보는 날이다"라는 어느 신부님의 강론을 읽고는 성소의 의미를 새롭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성소의 의미를 더욱 새롭히게 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제가 산청본당에서 섬기는 삶을 배우고 있을 때였습니다. 인근에 있는 성심원(프란치스꼬 수도회에서 봉사하고 있는 한센병환자 정착마을)에서 혼자 계시는 노인 분들을 돌봐 드리는 재가복지센타라는 것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저도 자원봉사자로 등록하여 두 분 할머니를 일주일에 한 번씩 찾아 뵈었습니다. 두 분 할머니(두 분 다 신자는 아닙니다)는 같은 동네에 살고 계셨는데, 우아무개 할머니는 노탐도 많으시고 저한테 요구하는 것도 많으신데 비해 김아무개 할머니는 갈 때마다 미안해 하시며 가지고 간 간식도 집에 아이들이나 주라며 돌려 보내려 하셨습니다. 그렇게 일 년 좀 넘게 돌봐 드리고 있었는데, 어느날 연세가 더 많으신 우아무개 할머니께 치매가 왔습니다. 처음 얼마 동안은 서울에 살고 있는 아들 내외가 번갈아 가며 와서 돌봐 드리다가 시간이 지나자 할머니를 서울로 모셔 갔습니다.
할머니들을 돌봐 드리는 일을 시작했을 때는 본당 사무장님과 한팀이 되어 활동을 했었으나 본당 사정으로 사무장님이 그만 두고 나서부터는 거의 저 혼자 다녔습니다. 가끔씩 제가 못가볼 사정이 생기면 주위의 지인들에게 부탁하곤 했었는데 한 자매님은 제가 특별히 부탁하지 않아도 종종 시간을 내어 제가 가지 않는 날을 택해 할머니들을 보살펴 드리곤 했습니다. 어느 해인가 성주간을 한 주 앞두고 제가 좀 바빴던 터라 그 자매님께 부탁을 드렸지요. 그런데 그 자매님이 다녀와서는 아들이 서울로 모시고 간 우아무개 할머니의 상태가 악화되어 다시 모시고 왔더라고 전해 주었습니다. 그 소식을 전해 듣고 한번 찾아 뵈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 다음 주간이 성주간이었던지라 그만 깜박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부활 대축일이 지나고 그 주간 금요일 오후에 갑자가 그 생각이 나는 것이었습니다. 마침 비가 오고 있었습니다만 곧장 차를 몰고 우아무개 할머니 집으로 갔지요. 할머니는 이틀 전부터 혼수상태에 빠져 가쁜 숨을 몰아 쉬고 있었습니다. 할머니의 손을 붙잡고 마음 속으로 말씀드렸습니다. "할머니 저 왔습니다. 많이 기다리셨죠? 이제 편안히 눈 감으세요."
우두커니 앉아 있는 아들에게 제 연락처를 남겨 두고는 집으로 돌아 왔는데 그 다음날 이른 아침, 새벽에 할머니가 떠나셨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할머니의 부음을 들으며 할머니가 정말 저를 보고 떠나고 싶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다지 긴 시간도 아니었고 그다지 잘해 드린 것도 아니었지만 생면부지의 제가 당신을 돌봐드리는 것이 무척이나 고마우셨던가 봅니다. 그랬기에 치매에 걸려 아들도 못알아보았지만 유일하게 저는 알아 보셨던 것입니다. 시골에서 외로이 살아가는 당신 삶의 끄트머리에 제가 베풀어 드린 것이 고마워서 떠나시기 전 마지막으로 저를 보고 싶어 하셨고 할머니의 그 간절한 바람을 하느님께서 들으셔서 저를 부르신 것이었습니다.
성소는 글자 그대로 거룩한 부르심, 하느님의 부르심입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제나 수도자, 그리스도인, 결혼(성소)에로만 부르시겠습까. 당신의 손길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지 부르지 않으시겠습니까. 그 일을 계기로 저는 성소의 의미를 다시금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곳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을 통해, 저의 손길이 필요한 곳으로 주님은 저를 부르고 계십니다. 행여 저의 무관심과 어리석음으로 인해 그 부르심을 놓쳐 버리는 일이 없도록 오늘도 귀를 쫑긋 세워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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